나흘 전 감자 조각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계집애 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 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 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뒤로 살며시 와서,
얘!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 척 만 척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황차 망아지 만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 놈 보구.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디?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중략)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날 테니 여기 서 얼른 먹어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감자가 맛있단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려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저자 : 김유정
김유정은 조선 현종의 비 명성왕후의 친정아버지인 김우명의 후손으로 그의 넷째 손자 도택(道澤)이 김유정의 선조가 되었다. 아버지 김춘식은 자를 윤주(允周)라 했으며 진사시험에 합격해 사마좌임금부주사(司馬座任禁府主事)를 지냈다.[2] 1908년 1월 18일 김유정은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하였으며 농촌에서 야학 활동을 하였다. 춘천 MBC가 김유정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김유정은 민중들을 사랑하여, 명문집안의 자손인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소작인들에게도 존대말을 하였다고 한다. 단편 소설 '소낙비'가 1935년 《조선일보》에 당선되고, 《중앙일보》에는 '노다지'가 당선되어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집안이 기울면서 공장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누나에게 얹혀살다가 1937년에 폐결핵으로 요절할 때까지 30여 편의 소설을 창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동백꽃', '봄봄', '산골 나그네'등이 있다.